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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바람직한 자세는? - 하나님의교회 [모세와 예수님]

by 다다룸하우스 2023. 7. 25.

175개국 7500여 개 교회가 세워졌고, 국내에는 400여 개 교회가 설립된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는 점이다.
 

교회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한 십자가,  왜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까?

 

 무족건 십자가를 세워선 안된다고만 말한다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이 든다.
 
성경에선 십자가에 대한 우리들의 바람직한 자세에 대해 어떻게 알려주고 있을까?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 [모세와 예수님] 주제를 통해 십자가에 담긴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신 예수님

 
십자가의 의의(말이나 속뜻)를 보고자 하는데, 왜 모세와 예수님을 언급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성경에 대해 알만한 분들은 모세와 예수님은 그림자와 실체 또는 예언과 에언 성취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 신 18:17~18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 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것이라
- 행 3:20~22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신명기 18장에 기록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신다는 예언의 성취라고 알려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에 따라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다. 다시 말해 구약 모세의 행적은 장차 오실 예수님의 행적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예언과 예언 성취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세의 행적 속에 묻어나는 예수님께서 장차 당하실 십자가 행적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십자가의 의의를 이해해 보자.
 
 

2. 팔을 든 모세와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님

모세의 행적 가운데 이스라엘과 아말렉 전투를 잘 알 것이다.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여호수아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는가? 가히 사람이 믿기 힘든 방법이었다.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 출 17:8~13

 
아말렉과의 전투의 승리 원천은 여호수아 군대의 수와 힘이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처럼 모세가 팔을 들었던 이유이다.
성경은 단순히 모세가 팔을 들었던 그 순간만을 기록해 우리의 교훈으로 주신 것일까? 이러한 모세의 행적은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이루셨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 요 12:31~33

위에 세상 임금은 (계 12:9) 사단이다. 사단을 쫓겨내시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팔을 들고 있었던 역사와 동일하다.
 
 

3. 모세의 놋뱀 사건과 십자가 우상숭배

 
이렇듯 예언과 예언 성취 관계인 모세와 예수님. 모세 행적 속 '놋뱀사건' 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안에 담긴 십자가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 땅을 둘러 행하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 하나님께 원망하는 죄를 범했다. 그 결과 많은 백성들은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게 되었다. 원망하는 죄로 뱀에게 물린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놀랬겠는가,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그들에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민 21:7~9

 
놀라운 일이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쳐다본즉 살아나는 일을 경험했다. 만약 놋뱀을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이들은 곧이어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 무서운 행동을 범하게 된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살린 것임을 망각한 채, 놋뱀 자체에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 그들이 살아난 것으로 오해하였다. 그 오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신, 우상을 만들어냈다. 바로 놋뱀숭배 사상이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놋뱀은 무려 8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전에 자리 잡히게 되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 왕하 18:3~4

 
800년이 지난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놋뱀이 만연했다. 놋뱀은 하나님 성전 안에 버젓이 있었던 지극히 당연했던 우상이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만들어 섬긴 놋뱀을 부숴버리고 느후수단이라 칭했다. 느후스단은 '놋조각'이라는 뜻이다. 당시 종교개혁자였던 히스기야의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행위였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는 놋뱀과 같은 우상은 놋조각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오늘날 십자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우상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구원받은 요한, 사도바울, 베드로는 십자가를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 선상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와 희생으로 구원이 있음을 증거 하였다. 즉 십자가는 나무조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4. 오직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구원

 
1) 요한의 눈에 보였던 것은 과연 십자가였을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이었을까?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 요19:34

 
요한의 눈에는 십자가 형상 자체가 아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보았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요한은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죽음 이후에도 예수님 곁에 함께한 요한은 십자가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2) 사도바울의 구원은 과연 십자가였을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이었을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엡1:7

십자가를 만들어 세움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였는가? 아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받음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
 
 
3) 베드로 눈에 보였던 것은 과연 십자가였을까,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이었을까?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 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 벧전1:18~19

무엇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였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이다. 온갖 채찍질과 가시면류관, 대못에 박혀버린 예수님의 손과 발... 오직 그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지, 십자가 형상 자체가 구원을 준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되려 사람이 십자가와 같은 나무로 만든 우상을 만들어 세우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다(렘 10:1~5, 신 27:15)
 

이제 십자가에 대한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하나님 믿는 성전에 혹은 교회 등 십자가를 절대 세워선 안 되는 것이다. 놋뱀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 빠지게 된다면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사람이 만든 또 다른 신, 우상들이 생겨나게 된다.
형상 자체를 섬기는 것이 아닌, 그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 공로를 생각하자. 또한 당신의 피로 새 언약을 직접 세우신 예수님의 큰 뜻을 발견해 모두가 보이지 않는 가치있고 소중한 새언약 유월절 진리를 소중히 지키기를 소원한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야 말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현하고 실천하는 진리 교회임을 기억하자.